[기고] `국가 R&D 혁신안` 연구기관 재도약 모멘텀 되길

장규태 / 한국생명공학연구원장

"과학자들은 논문을 덜 써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계속 늘어만 가는 열등한(poor) 연구에 질 높은(good) 연구가 파묻힐 것이다." 지난달 11일 영국 국제학술지 `네이처`에 실린 한 칼럼의 내용이다.

세계적으로 최근 논문 수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최근 10년간(2005~2014년) 박사 연구원 수는 59% 증가하는 데 그쳤지만 과학기술논문(SCI) 수는 2배 이상 늘었다.

성과의 양적인 성장에만 치우진 나머지 활용도가 낮은 논문과 특허가 양산됐다는 지적도 있지만, 양의 증가가 어느 정도 올라야 질적인 전환을 할 수 있다는 헤겔의 말처럼 그동안 우리는 앞으로의 질적 성장을 위한 기반을 마련했다고 생각한다.

정부출연연구기관에서도 마찬가지다. 정부출연연구기관은 연간 약 4조원의 연구개발비를 사용하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연구집단이다. 그동안 우리나라 경제 성장은 이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러나 현재 이들이 수행하고 있는 연구과제 절반 이상이 5억원 이하, 3년 미만의 단기 소규모 과제라는 현실에서 연구와 성과의 질이 낮아지고 있는 것은, 그래서 세계 경쟁 기관들과의 경쟁에서 뒤처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염려된다.

항간에는 정부출연연구기관이 원천기술도 아니고 상용화도 잘 되지 않는 애매한 연구, 대학이나 기업과 차별성 없는 연구를 백화점식으로 수행한다는 지적도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과학기술전략회의에 보고된 정부 연구개발(R&D) 혁신 방안에서 정부출연연구기관을 10년 후 시장에서 필요한 원천기술을 개발하는 메카로 육성한다는 계획은 환영할 만하다.

출연금의 70% 이상을 기관 핵심 분야에 투자하도록 하고, 정부 연구과제도 중장기형(5년 이상·5억원 이상) 과제를 지원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안정적 인건비 비중을 높이고 연구 성과에 따라 연구수당이 배분될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하겠다는 것이 골자다.

정부출연연구기관들도 그동안 자율적으로 혁신하기 위한 노력을 해왔다. 한국생명공학연구원의 경우 안정적인 연구 환경에서 집중적인 R&D를 수행해 국가사회적 현안을 해결하는 세계 수준의 연구그룹을 육성하기 위해 전문연구단 체제를 도입, 운영하고 있다. 기관의 연간 주요 사업 연구비의 20%(2018년까지 총 200억원)를 지원하고, 수탁사업 참여를 제한해 연구 몰입도를 높이는 한편 주요 사업으로 인건비의 80%를 지원하고 있다.

필자는 정부 R&D 혁신이 성공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가 성과평가라고 생각한다. 우리나라는 각종 평가에서 양적·질적으로 과거 대비 증가된 목표를 제시해야만 하지만, 미국 독일 같은 선진국들은 오히려 오래전부터 연구과제 규모나 기간에 따라 발표할 수 있는 논문 수를 제한하고 있다는 점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적의 공격으로 인해 위기에 처하면 자기 꼬리를 스스로 잘라내어 위기에서 벗어나는 도마뱀같이 정부출연연구기관도 정부에 떠밀려 마지못해 변화를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혁신해야 한다. 로버트 기요사키의 말처럼 새로운 내가 태어나기 위해서는 종전의 나는 죽어야 한다.

그래야 실효성이 있는 혁신이 이뤄지고, 50년 후의 대한민국을 이끌어가는 명실상부한 미래 원천기술 개발의 메카로 우뚝 설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바로 어려운 여건에서도 정부출연연구기관에 몸담고 오랜 기간 실험실에서 열정을 불태워 온 많은 연구원들이 노력한 결실일 것이다.

정부가 고심 끝에 제시한 정부 R&D 혁신 방안이 정부출연연구기관을 한 단계 도약시킬 수 있는 새로운 모멘텀이 되기를 기대해본다.